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항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 시새워 벙글어진 : 다투어 피어날
* 향연(香煙) : 향이 타며 나는 연기
<해설> 1955년에 [현대문학]에 발표하였으며, 1969년 이수복 시인의 시집 [봄비]에 수록된 표제시이다.
이 시는 봄의 아름다운 정경을 그리면서 이를 배경삼아 돌아오지 않는 님에의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표면상으로 볼 때는, 머지 않아 다가올 아름다운 봄날의 모습에 대한 상상일 뿐이지만,
1연에서 보이는 '서러운 풀빛'이라는 표현이 그다지 단순한 봄날의 정경 묘사로 이루어진 시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봄날에 돋아나는 풀빛이 왜 서러운 것인가?
그것은 그의 마음에 어떤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제4연에서 확인되는데, 봄이 오면 따뜻한 날씨와 함께 대지 위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봄의 상징인 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비유함으로써,
그의 임은 이 세상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그는 봄의 아름다움이 아름답고 기쁘게만 여겨지지는 않는 것이다.
반면에 2연과 3연에 나오는 종달새와 꽃밭의 풍경은 그야말로 조금도 그늘도 없이 밝고 아름다운 봄의 모습 그대로이다.
봄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2,3연도 결국 4연의 내용확인을 통해 서글픈 봄풍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시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봄풍경이라는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푸르른 빛의 연속적인 이미지가 '서러움'의 정서를 계속 심화시키면서 마지막에 '죽음'의 의미로 집약되고 있다.
이 시의 애상은 시적 자아의 '죽음'에 대한 의식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봄비 내린 뒤에 더욱 더 푸르게 짙어 갈 자연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적자아는 '죽음'으로 그 인식을 옮겨 가는데,
봄비를 받아 생명력으로 약동하는 자연물에서 생명이 아닌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대시 목록,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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